호르무즈 해협, 배가 다니는 좁은 길 하나가 막히면 왜 세계 유가가 오르는가
바다는 넓습니다. 그런데 세계 에너지 시장은 의외로 몇 군데의 아주 좁은 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곳 가운데 하나가 이란과 오만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입니다. 이곳에서 선박 운항에 문제가 생기면 중동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과 한국 기업의 원재료 수입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이란 해협 당국이 통항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제재 대상 선박을 77척으로 확대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 해운회사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7척은 한국해운협회 확인 결과 한국 회사가 직접 소유한 선박이 아니라 해외 선주 소유 선박이었고 한국인 선원도 승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단순히 “한국 선박이 이란 제재를 받았다”는 뉴스로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세계의 바다는 이렇게 넓은데 왜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좁은 길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세계 유가가 흔들릴까요?
호르무즈가 중요한 이유는 길의 크기가 아니라 지나가는 물량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평균 약 2,090만 배럴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전 세계 석유계 액체연료 소비량의 약 20%, 세계 해상 석유교역량의 약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이란 등의 주요 산유국이 원유를 세계 시장으로 내보내는 출구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이 물량을 곧바로 대신할 다른 길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EIA는 사우디아라비아의 East-West 원유 파이프라인과 UAE의 Abu Dhabi 파이프라인을 이용하면 호르무즈를 우회해 하루 약 470만 배럴을 운송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상당한 양이지만 평상시 호르무즈를 통과하던 하루 2천만 배럴 이상의 물량 전체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초크포인트(chokepoint)란 바로 이런 곳을 뜻합니다. 길 자체는 좁지만 막혔을 때 다른 경로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지점입니다.
유가를 움직이는 것은 '기름이 없어졌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호르무즈에서 선박 운항 위험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 순간 세계 원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시장에서는 여러 비용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선사가 해당 지역을 운항할 위험을 다시 계산합니다. 공격이나 나포 가능성이 커지면 선박의 전쟁위험보험료가 오르고 선주가 요구하는 운임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2026년 중동 충돌이 확대됐을 당시 일부 선박의 전쟁위험 보험료가 급등한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었습니다.
운항 자체를 연기하거나 중단하는 선박이 늘어나면 실제 원유 공급도 영향을 받습니다. 산유국 입장에서는 원유를 생산해도 실어 나를 배가 부족하면 저장시설이 차게 되고 결국 생산량을 줄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시장이 보는 것은 단순한 원유 생산능력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 시장에 전달할 수 있는 원유의 양입니다.
2026년에는 실제로 얼마나 줄었을까
2026년의 상황은 호르무즈 해협이 왜 중요한지를 실제 숫자로 보여줍니다.
EIA 자료를 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계 액체연료는 2025년 4분기 하루 평균 약 2,160만 배럴이었지만 2026년 2분기에는 약 490만 배럴까지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원유시장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EIA는 2026년 2분기 호르무즈를 통한 국제 원유 흐름 차질이 원유 가격 상승과 변동성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습니다. Brent 가격은 4월 29일 배럴당 118달러까지 올랐습니다.
6월에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합의 이후 통항량이 늘어나면서 한때 정상화 기대가 커졌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9월 EIA 전망에서는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를 통한 중동 원유 수송이 다시 불안정해지면서 8월 중동지역의 생산 차질 규모가 하루 평균 약 670만 배럴로 확대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EIA는 현재 중동의 원유 수송 제약이 2026년 말까지 일부 지속되고, 대부분의 생산과 교역이 충돌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2027년 2분기까지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동 원유를 많이 수입하지 않는데 왜 휘발유가 오를까
여기에서 흔히 생기는 오해가 있습니다.
미국은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나면서 과거보다 페르시아만 원유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습니다. EIA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미국이 호르무즈를 통해 수입한 페르시아만산 원유와 콘덴세이트는 하루 약 40만 배럴로, 미국 원유 수입의 약 7%, 전체 석유계 액체연료 소비의 약 2%에 해당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소비자가 호르무즈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원유는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중동 원유 공급이 부족해지면 다른 지역의 원유를 사려는 경쟁이 커집니다. 미국산 원유나 미국 정유사가 생산한 휘발유·디젤에 대한 해외 수요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중동 원유를 직접 많이 수입하지 않더라도 Brent와 같은 국제 원유가격이 오르고 세계 석유제품 공급이 빠듯해지면 미국 휘발유와 디젤 가격에도 상승 압력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EIA는 국제 석유 물류 차질이 공급 부족 위험과 운송비를 높이고, 결국 석유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국에는 오히려 더 직접적인 문제입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주요 목적지는 아시아입니다.
EIA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유와 콘덴세이트의 약 89%가 아시아로 향했습니다. 중국·인도·일본·한국 네 나라가 전체 물량의 약 74%를 차지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국제유가만 볼 것이 아니라 운임과 보험료, 환율을 함께 봐야 합니다.
같은 원유 가격이라도 선박 확보가 어려워지고 보험료가 오르면 실제 한국 정유사에 도착하는 비용은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까지 상승하면 원화 기준 수입비용은 한 번 더 증가합니다.
그래서 호르무즈 뉴스는 정유회사나 해운회사에만 영향을 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항공·운송·화학·플라스틱·제조업처럼 석유와 운송비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까지 비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뉴스를 볼 때는 선박 숫자 하나만 보지 마세요
“해협이 봉쇄됐다”, “선박 통항이 재개됐다” 같은 제목만으로 유가 방향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 다섯 가지를 함께 보면 실제 시장 상황을 훨씬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 확인할 지표 | 무엇을 의미하나 | 주의할 점 |
|---|---|---|
| 선박 통항 수 | 운항 위험과 실제 선박 움직임 | AIS를 끄고 운항하는 선박이 있어 집계가 완전하지 않을 수 있음 |
| 하루 원유 통과량 | 실제로 시장에 전달되는 원유 규모 | 선박 숫자보다 적재량이 더 중요함 |
| 산유국 생산 차질 | 수송 차질이 생산 감소로 이어졌는지 확인 | 통항 감소와 생산 감소는 같은 숫자가 아님 |
| 보험료와 운임 | 지정학적 위험이 물류비로 전환되는 정도 | 운항이 가능해도 비용은 크게 오를 수 있음 |
| 재고와 정제마진 | 원유 차질이 휘발유·디젤 가격까지 전달되는지 확인 | 유가 상승이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같은 비율로 반영되지는 않음 |
특히 선박 통항량이 줄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먼저 배의 숫자가 줄었는지, 실제 운송된 배럴 수가 줄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 산유국의 생산 차질, 보험료와 운임, 세계 원유재고까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보여주는 세계 물류의 약점
세계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가장 효율적인 지역에서 생산하고 거대한 선박과 항만, 운하와 해협을 이용해 세계 곳곳으로 운송하는 구조입니다.
평상시에는 이 구조가 비용을 크게 낮춥니다. 하지만 몇몇 핵심 통로에 문제가 생기면 위험이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시작된 문제는 유조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해협의 위험 증가 → 선박 운항 감소 → 보험·운임 상승 → 원유 공급 감소 → 국제유가 상승 → 정유제품 가격 상승 → 운송비와 생산비 상승이라는 경로를 따라 세계 경제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호르무즈 관련 뉴스를 볼 때는 “해협이 열렸나, 닫혔나”만 확인하기보다 실제 원유 통과량과 생산 차질, 보험·운임, 재고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좁은 해협 하나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이유는 지리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길을 대신할 수 있는 여유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와 교역이 한곳에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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